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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05-11-12
한국 초등학교에서 이머젼교육의 실례

[박성방 서울영훈초등학교 교장]
“열린 교장·열린 경영·열린 교육자”

박성방 교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초등교육계의 뉴스 메이커. 80년대 중반부터 영훈초등학교를 이끌며 참신하고 획기적인 교육적 시도로 교육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온 덕분이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PDA휴대정보단말기로 일정을 관리하고 재생지에 컴퓨터로 편집한 명함을 들고 다닐 만큼 젊은 감각을 지닌 그는 “21세기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획일성을 벗어난 차별화된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글·김성실 / 본지 기자


서울 강북구 미아동 영훈초등학교 교장 朴性芳·68 4학년 1반 교실. 두 명의 교사가 35명의 반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실 한편에서는 한국인 교사 김선경씨의 국어 수업이, 다른 한편에서는 캐나다에서 초등학교 교사생활을 한 셰리씨의 과학수업이 한창이다.
“Today’s topic is natural things and man-made things. Let’s talk about them. What are naural things (오늘 공부할 주제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예요. 그것에 관해 얘기해 봅시다. 자연적인 것으로는 무엇이 있죠)?”
“Pick me! Pick me (저요! 저요)!”
교사의 지명을 받은 아이가 말한다.
“Flowers, trees, mountains and wind (꽃, 나무, 산과 바람이요).”
“That’s right. Now, do you think TV is a natural thing(그래요. 그럼 TV는 자연적인 것인가요)?”
“No, it’s a man-made thing (아뇨. 인공적인 것입니다).”
“Good. Now, cut and paste pictures of things you think ‘Science’. Paste ‘man-made’ in the left side, and ‘natural’ in the right side of the paper(좋아요. 이제 과학이라고 생각하는 사진들을 오려 붙이세요. 인공적인 것은 왼쪽에, 자연적인 것은 오른쪽에 붙여요).”
교사가 도화지를 한 장씩 나눠주자 아이들은 저마다 잡지가 수북하게 쌓인 책상으로 가서 사진을 오려 붙이기 시작한다.

영훈초등학교는 수학. 과학.슬기로운 생활등 일반 교과목을 원어민 교사가 영어로 가르치는 이머전 프로그램을 도입, 시행하고 있다. 박성방 교장이 이머전 학급을 찾아 원어민 교사와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다.
IP도입 영어교육의 새 모델 제시

박성방 교장은 이처럼 영어를 따로 배우는 게 아니라 일반 교과목을 영어로 가르치고 배우는 ‘이머전 프로그램 Immersion Program IP’을 지난 95년부터 도입,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1963년 캐나다 퀘벡에서 처음 실시된 외국어 교육방법으로, 정규교과 내용을 외국어로 교육해 교과내용과 외국어를 동시에 습득시키는 방법이다. 따라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외국어를 모국어 익히듯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학술적인 언어에도 숙달하게 된다”는게 박 교장의 설명이다.

박 교장은 국내에서 인터넷 바람이 불기 전인 94년에 이미 교실마다 컴퓨터를 들여놓고 랜을 구축해 컴퓨터와 인터넷 교육을 실시할 정도로 시대감각이 앞선 사람이다. 그러나 정보화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컴퓨터 조작법과 웹페이지 활용법을 익혀줬음에도 그 속에 담긴 정보의 활용이란 측면에서는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자평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인터넷에 들어가 보세요. 전자상거래의 96%가 영어로 이루어지고 홈페이지의 78%가 영어로 구성돼 있습니다. 영어를 모르면 시쳇말로 눈 뜬 장님이죠. 그렇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외국인과 대화 한마디 나눌 수 없는 게 우리 영어교육의 현주소 아닙니까?”

그래서 이머전 교육을 도입하게 됐다는 박성방 교장. 그는 “시대적 요구와 세계화 물결에 휘말려 어린 자녀들을 영어권 국가로 조기유학 보내거나 외국인학교에 입학시키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며 “이머전 프로그램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영어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정체성 상실의 위험도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영훈초등학교에서는 1, 2학년 전체와 3∼5학년 일부 학급을 이머전반으로 편성·운영하고 있는데, 이머전반에는 한국인 담임교사와 함께 원어민 교사가 배치된다. 원어민 교사는 수학 네 시간, 슬기로운 생활 네 시간, 즐거운 생활 중 미술분야 두 시간, Language Art 네 시간을 담당하며 한국인 교사는 바른 생활, 국어, 특활, 체육 등을 가르친다. 미술과 음악은 팀티칭으로 함께 지도하기도 한다. 원어민 교사가 가르친 내용을 한국어로 다시 반복하는 일은 없으며 수업시간 내내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다.

다양한 국적의 원어민 교사 채용

교재는 미국에 30여 년 동안 체류하면서 교편을 잡은 경험이 있는 박교장이 직접 국정교과서를 번역해 외국인 교사의 감수를 받아 사용하고 있다.
현재 영훈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원어민 교사는 모두 17명. 교사 1인당 연봉은 2만5천 달러로, 한국에 올 때 드는 경비와 이주비, 아파트 전세금, 각종 생활용품 마련을 위한 경비 역시 학교에서 제공한다. 이처럼 원어민 교사 유치에 많은 경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이머전 교육은 철저히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머전 학급의 수업료는 일반학급의 두 배에 달한다.

박 교장이 세계 각지를 돌며 직접 채용한 원어민 교사들은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저마다 국적은 다르지만 모두 본국에서 발급한 초등교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교직경험이 최소 1∼2년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다. 주당 30시간의 수업 중 절반이 이들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채용 시 영어능력은 물론 초등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박 교장의 설명이다.

교육효과는 어떨까?
“이머전 학급에서 몇 개월 공부했다고 당장 영어를 유창하게 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교육 초기에는 ‘침묵의 시기’를 거치게 되죠. 이 시기에는 영어를 듣고 이해하는 능력이 신장되며 단어를 하나씩 습득하게 됩니다. 이 시기를 거친 아이들은 익힌 단어를 한두 개 씩 활용해 영어로 말하게 됩니다. 어린이들이 긴 어구나 완전한 문장을 구사하게 되는 것은 3, 4학년이 지나야 가능합니다. 6학년이 되면 원어민 교사의 말을 알아듣는데 별 문제가 없고 의사표현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 됩니다.”
박성방 교장은 “다양한 국적의 원어민 교사를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하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게 되는 것도 이머전 교육의 장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렇더라도 일반 교과의 성취도에는 다소 문제가 있지 않을까?
“외국의 보고에 의하면 처음에는 이머전 학급의 어린이들이 보통 학급 어린이들에 비해 처지는 것 같이 보이기는 하나 나중에는 일반 학급 어린이들만큼 실력 향상을 보였다고 합니다. 본교 아이들을 비교해 보더라도 별 차이가 없구요. 오히려 2개 국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은 깊은 통찰력을 지니게 되며 다양하게 사고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아동 중심의 ‘자유주제 학습’ 중시

하교길, 아이들을 배웅하고 있다.
아이들이 티라노사우르스, 메갈로사우르스, 티플로도쿠스 등 공룡의 이름 및 특성을 조사해 공룡그림책을 만들거나 공룡세상이 다시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상상해 역할극을 꾸민다면 이건 무슨 과목 수업일까? 과학? 미술? 국어? 정답은 이 과목들을 모두 합쳐 놓은 ‘주제학습 Theme Study’시간이다.
1학년은 ‘공룡’과 ‘우리의 몸’, 2학년은 ‘장난감 박람회’와 ‘해적’, 3학년은 ‘콩의 여행’과 ‘개구리’, 4학년은 ‘서울’과 ‘봉선화’, 5학년은 ‘꽃’, 6학년은 ‘우리 문화유산’ 등 영훈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유롭게 선정한 주제를 바탕으로 교과를 통합해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주제학습을 실시한다.

일주일에 2시간씩 재량활동시간을 이용해 실시되는 자유주제 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주제에 내포된 지식에 의문을 갖고 그 의문의 해결을 위해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고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학습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박성방 교장은 “국어는 국어시간에만 하고 수학은 수학시간에만 해야 한다는 건 닫힌 교육”이라며 “특정한 주제를 놓고 여러 교과지식을 통합적으로 활용하는 주제학습을 통해 아이들은 창의적이면서도 다양한 사고를 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게 된다”고 말한다.

박 교장은 “주제학습이 아이들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하는 학습활동이 되려면 교사가 설정한 학습목표를 향해 어린이들이 활동하도록 하는 관점에서 과감히 탈피해 아이들 스스로 흥미를 느끼고 하고싶어 하는 활동에서 출발하는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개별화된 학습자 중심 교육 절실”

1954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칸소 주립대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박성방 교장은 세 아이를 낳고 막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콘코디아 사범대학에 진학,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사 자격증을 땄다.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욕심에서 시작한 교육학 공부에 매료돼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됐다”는 박 교장. 그는 미국의 유명한 교육구 중 하나이며 헤밍웨이가 살았던 오크파크 지역에서 공립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등 미국 교육 일선에서 10여 년간 활동하다 1984년 귀국, 영훈초등학교에 부임했다.

이런 독특한 이력 때문일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박 교장은 획기적이고 참신한 교육적 실험으로 국내 교육계에 새로운 화두를 던져 왔다. 1986년 국내 최초로 도입한 열린교육과 예체능 교과전담교사제, 1996년의 인터넷 개통식과 정보화 교육, 그리고 현재의 이머전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영훈초등학교의 새로운 교육적 시도들은 언제나 화제를 불러 일으켰고 그때마다 그는 교육계의 뉴스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PDA로 일정을 관리하고 재생지에 컴퓨터로 편집한 명함을 들고 다닐 만큼 젊은 감각을 지닌 박 교장은 21세기 우리 교육의 발전을 위해 획일성을 벗어난 차별화된 교육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모든 아이들은 개성과 능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학생 각자에게 맞는 교육, 즉 개별화된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교육의 질이 반드시 평준화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벽 없는 교장실은 투명경영의 산실

교장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책은 더 흥미진진한 것일까?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영훈초등학교 교장실엔 벽이 없다. 벽 대신 유리창으로 공간을 구분해 운동장이나 교무실에서도 교장실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모든 게 투명해야 학교행정이 음성화될 수 있는 소지가 사라지고 학교 구성원간에 활발한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교장실만이 아니다. 교실과 교실 사이에도 벽이 없어 교사들 간에 활발한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동료장학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교사들은 수업과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공문서를 학교장과 행정실에서 처리한다. 교사 연수는 물론 학부모 연수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한편 학부모들과는 이메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의견을 수렴한다.
학년초면 신입생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일주일간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는데 그때 박성방 교장이 학부모들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학교에 촌지를 갖고 오는 촌스러운 부모가 되지 마십시오.”
학교교육에 대한 신뢰는 바로 이런 작은 원칙을 지키도록 학교구성원들이 서로를 격려하는 데서부터 싹트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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